"그럼 나도 내 이야기를 하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지하생활자는 벌레가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짓궂은 인간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위인이며, 악인도 될 수 없었고, 선인도, 비열한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심지어 벌레도 될 수 없었다”고 하지요.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자기자신에 관한 것,
하여 나도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어째서 내가 한낱 벌레조차 될 수 없었느냐 하는 것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만한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었다. 여러분 나는 단언한다-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은 곧 병이라고. 병 중에서도 진짜 병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지극히 평범한 의식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자의식에 대한 장황한 얘기 끝에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의식의 쓰라림이 일종의 저주스러운 오욕에 찬 감미로운 느낌으로 변하여 마침내는 영락없는 쾌락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렇다, 쾌락이다. 진짜 쾌락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내가 이런 소릴 하는 것은 남들도 이런 쾌락을 맛보고 있는지 그것을 똑똑히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한테 설명하마. 이 경우의 쾌감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자기의 굴욕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즉, 자기가 막다른 벽에 부딪쳐서 그 괴로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달리 아무런 방도도 없다, 이제 새삼스레 딴사람이 될 수는 없다, 설사 다른 무엇으로 변할 수 있다는 신념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손 치더라도 나 자신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원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별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변해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서 일종의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다시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지껄여대긴 했지만 대체 무엇을 설명할 수 있었다 말인가? 내가 말하는 쾌락은 어떻게 설명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설명해보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 내가 펜을 잡은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 아닌가…….
2015.2.
오늘은 새벽부터 내내 이른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이른 봄을 알려주는 꽃이 복수초라고 하지요.
인터넷에 떠도는 복수초는 언제나 꽁꽁 언 눈이나 얼음과 함께였지만
며칠 전 화암사에서 내가 본 그 꽃은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무 낙엽더미 속에서 밤송이와도 같고 두릅처럼도 생긴 삐죽한 이파리에 싸여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무지한 내 발에 밟힐 수도 있었겠습니다.
온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온힘을 다해 찾지만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넘어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는 나는 이제 완전히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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