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던지다

헤어졌다

진주로부터 2018. 1. 12. 16:15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희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중략) 도화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이수도 바야흐로 ‘풀 먹으면’ 속 편하고 ‘나이 먹으며’ 털 빠지는 시기를 맞았다는 걸.

-다녀올게.

  도화가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이수 맨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에는 길을 나설 때 이수 발등에 자주 입맞춰줬다. 한 손 가득 발을 감싼 뒤 털 난 발가락을 쓰다듬다 이불 안에 도로 넣어주곤 했다. 도화는 그 발, 자신과 많은 곳을 함께 간 연인의 발을 응시했다. 그러곤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섰다. (중략)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졸음과 추위에 맞서며 매연에 잠긴 도시 속으로 걸어나갔다. 바깥공기가 폐에 닿자 몸에 피가 도는 속도가 빨라졌다. 몸 상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다른 몸으로 갈아타는 느낌이었다. 도화가 6호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스마트폰으로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곤 속으로 ‘오늘밤에는 꼭 헤어지자 얘기해야지....’ 다짐했다. 그런 지 두 달째였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中 「건너편」  

"그러다 보면 우리는 오늘도 헤어지지 못할 것이다"를 반복하던 나날이 지나고, 성탄절에 도희를 데리고 기어이 노량진 수산시장 횟집으로 갔던 '찌질한' 이수 앞에서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라고, 작품 속 도희가 결국 말을 하고 말았을 때 내 감정이입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 이성복에 따르면,  이건 "침 묻은 밥처럼 다 상해버리는" 감정이입이다)

 어쨌든 내겐 그 둘이 결국 희끗희끗한 비둘기 날개 같은 잔상을 남기며 '헤어졌다'는 게 중요했다.

 모순투성이 삶에 어울리는, 찌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간결한 역설적인 크리스마스 이별.  김애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다. 마트와 편의점 키드를 주인공로 하던 이전 작품과 다른 삭은 맛이 있다. 슬픔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스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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