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던지다

옛포스트]버린 책, 버릴 책, 남긴 책

진주로부터 2018. 1. 12. 17:33

2015-01-01 00:00:3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오늘 같은 12월 31일에 특히 기억나는 책이다.
 

1.8리터들이 생수병 열 개가 들어가는 커다란 상자 세 박스 분량의 책을 버렸다.
몇년 전 한번 솎아내고도, 여태 끌어안고 있었던 것들이다.
무수한 자필 사인 책

구독하던 문예지

소설책(특히 대학원에서 읽었던,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억도 나지 않는 대부분의 소설들)

의미없는 문학이론서들.
여기에 더해진 두껍고 비싸기까지 한 <사르트르평전>은

가히 지적 허영심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책을 버리며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의미있는 것 몇 점을 모아 보았다.
 

 
세상의 근원 -열린책들
  예술이냐  포르노냐  한 여성 아티스트의 행위예술을 두고 화제가 되었던,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을 소재로 한 동명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사
  전혜린의 번역이라 특히 내 주의를 끌었던, 내 오랜 애독서. 명문이다.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 -이론과실천
  전영태 선생님 댁 서가에 한 권이 더 있는 것을 알고, 졸라서 가져온 책이다.

추억의 팝송 -예성출판사
  앳되기까지 한 젊은 엘비스 프레슬리 얼굴을 표지모델로 한 팝송 가사와 악보집. 
  "마마 테이크 디스 베드지(badge) 어프 어브 미" 식의 말도 안 되는 한글 발음이 적힌 
   그야말로 '추억'의 책. 
 
소설의 이해 -문예출판사
  엉성한 석사논문의 영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가르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이제 내게 가장 쓸모 없어진 분야의 책 가운데 하나.
 
욕망의 진화 -백년서적
   훗날 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 제목을 차용하려고 했을 만큼 흥미롭게 읽었던

   95년판 진화심리학 서적.
   (저자를 옛날 표기법으로 '데이빗 부스'라 쓴  백년서적에서 나온 초판 <욕망의 진화>다.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A4용지에 프린트한
낡은 사진 한 장   
    프라하의 어느 거리, 색소폰을 부는 노신사가 외려 나를 곁눈질하고 있다. 
    노마드와 보헤미안을 꿈꾸던 시절의 나....
 
버린 책, 산 책, 남긴 책.
하지만 오늘 남긴 책마저도 언젠가는 조만간 다 버려야 할 것이다.
書架 네 개가 아직도 책으로 가득하다.

讀, 獨, 毒이다..... 





배낭여행


진주님 오랜만입니다.
새해엔 이세가지만 잘하십시요^^*
잘드시고,잘주무시고,잘거시기하십시요^^*
아자자!!입니다. 2015.01.01 10:44 수정 | 삭제 | 덧플


  • 진주
    오랜만에 글 남기셨군요. 실은 궁금하던 참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잘 거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자자!! 2015.01.01 19:46 수정 | 삭제


  • 박은하
    추억의 팝송에 눈이 확 가네요ㅋㅋ 한글발음 가사! 책마다 손때와 바랜 흔적이 있는 거 같아요. 저걸 어찌 정리를ㅜ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5.01.02 12:21 수정 | 삭제 | 덧플
    • 진주
      바쁘신 분이 이 누추한 곳까지...^^ (이런 너스레, 좀 식상하죠?)
      저도 팝송 책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제목은 나름대로 의역을 해서, "예스터데이 웬 아이 워즈 영 지난날의 청춘"이라고.ㅎ
      가진 것들이 점점 버거워지는 나이가 됐어요. 사람도 아끼는 책도 실은 다 집착인 거죠. 잘 버리는 게 잘 늙어가는 비결 같습니다.
      새해,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2015.01.02 17:14 수정 | 삭제
  • 소요
    지난 해 말, 중고책 서점에서 아무렇게나 고른 책을 읽고 있어요. 알랭 레몽이라는 작가의 '하루하루가 작별인 나날'이라는 책인데.. 잊고 있다 어제 꺼내들었어요. 책은 2001년 5월 초판 1쇄, 중고서점 태그에는 14년 11월. 그리고 책을 펴니, 한번도 읽지 않았던 책이더라구요. 표지조차도 펼쳐진 적이 없었던 것 같이.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이책!ㅋ 2015.01.22 13:18 | 삭제 | 덧플
    • 진주
      한번도 읽지 않은 책. 내게도 그런 책,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닳도록 읽어 거의 외울 지경인 책도. 편식이 심한 편이죠.
      문학 전공서적은 기부한 적도 있었는데(신문 인터뷰에도 나온 유명한 서점이던데) 전화해서 의향을 묻고 부치고... 그런 것도 이젠 너무 성가시고 해서 그냥 버렸어요. <하루하루가 작별인 나날>은 나도 제목에 끌렸을 것 같은데? ^^ 읽고 재미있으면 나 빌려줘요. 2015.01.23 12:15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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