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1 00:00:3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오늘 같은 12월 31일에 특히 기억나는 책이다.
1.8리터들이 생수병 열 개가 들어가는 커다란 상자 세 박스 분량의 책을 버렸다.
몇년 전 한번 솎아내고도, 여태 끌어안고 있었던 것들이다.
무수한 자필 사인 책
구독하던 문예지
소설책(특히 대학원에서 읽었던,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억도 나지 않는 대부분의 소설들)
의미없는 문학이론서들.
여기에 더해진 두껍고 비싸기까지 한 <사르트르평전>은
가히 지적 허영심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책을 버리며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의미있는 것 몇 점을 모아 보았다.
세상의 근원 -열린책들
예술이냐 포르노냐 한 여성 아티스트의 행위예술을 두고 화제가 되었던,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을 소재로 한 동명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사
전혜린의 번역이라 특히 내 주의를 끌었던, 내 오랜 애독서. 명문이다.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 -이론과실천
전영태 선생님 댁 서가에 한 권이 더 있는 것을 알고, 졸라서 가져온 책이다.
추억의 팝송 -예성출판사
앳되기까지 한 젊은 엘비스 프레슬리 얼굴을 표지모델로 한 팝송 가사와 악보집.
"마마 테이크 디스 베드지(badge) 어프 어브 미" 식의 말도 안 되는 한글 발음이 적힌
그야말로 '추억'의 책.
소설의 이해 -문예출판사
엉성한 석사논문의 영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가르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이제 내게 가장 쓸모 없어진 분야의 책 가운데 하나.
욕망의 진화 -백년서적
훗날 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 제목을 차용하려고 했을 만큼 흥미롭게 읽었던
95년판 진화심리학 서적.
(저자를 옛날 표기법으로 '데이빗 부스'라 쓴 백년서적에서 나온 초판 <욕망의 진화>다.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A4용지에 프린트한
낡은 사진 한 장
프라하의 어느 거리, 색소폰을 부는 노신사가 외려 나를 곁눈질하고 있다.
노마드와 보헤미안을 꿈꾸던 시절의 나....
버린 책, 산 책, 남긴 책.
하지만 오늘 남긴 책마저도 언젠가는 조만간 다 버려야 할 것이다.
書架 네 개가 아직도 책으로 가득하다.
讀, 獨, 毒이다.....

새해엔 이세가지만 잘하십시요^^*
잘드시고,잘주무시고,잘거시기하십시요^^*
아자자!!입니다. 2015.01.01 10:44 수정 | 삭제 | 덧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