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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세상의 근원

그 파리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일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에 관람객의 관심이 쏠려 있던 11월의 어느 날, 작은 방 구석진 벽에서 크지 않은 이 그림을 만났다. 쿠르베의 이 그림을 내가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꽤 충격이 컸었다. 동명 소설인 크리스틴 오르방의 에 그림이 등장하지만 쿠르베나 휘슬러 같은 실존했던 화가들도 실명으로 나오기 때문에 가상의 작품인지 현존하는 작품인지도 사실 나는 몰랐다. 2001년 [열린책들]사에서 낸 소설책 의 책장을 넘기면 앙드레 마송의 라는 다소 외설적이고 직설적인 펜화가 있고 (제임스 애벗 맥네일 휘슬러의 가 맨먼저 등장한다) 자크 라캉이 구입한 을 가리기 위해 부탁했던 그림이라는 설명이 들어 있었다. 이 설명조차도 소설적 장치의 하나인가 하는 생각..

세상의 근원

수많은 존재들과 그들이 남긴 작품들을 실어가는 이 거역할 수 없는 격변의 세월에 휩쓸려서 내 인생의 황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격렬한 아픔이 있었겠는가. 비록 우리가 떨어져 살았다고 해도, 회환과 열정과 비난과 한스러움과 실망, 이러한 감정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우리를 연결해 주는 데 한 몫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감정들이 존재할 자리마저 사라졌다. 게임은 싸우는 사람이 없으면 중단된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싸우기도 했던 우리의 영토에는, 이제 몇 폭의 그림들만이 살아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 그림은 아마도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진 온갖 비밀들, 두 사람이 은밀히 주고받았던 의미 있는 말들, 저 현란한 색채들에 갇혀 있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크리스틴..

[問]던지다 2022.10.03

뒤늦은 祭忘妹歌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음에 나는 간다는 말도 못하고 갔는지....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같은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네요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나기를 도 닦으며 기다리겠어요 9월 13일이 큰언니의 49재였다. 고성 상리면은 날이 좋았다. 바다도 훤히 보이고, 부모님 납골묘도 보이고, 보현암 금불상과, 또 부처에게 빌어 우리를 낳으셨다는 문수암도 보이는 명당(이라고 '兄夫'가 말했다)에 분골이 뿌려졌다. 아직 젊은데 남은 사람은 우짜냐, 고 형부의 형수되는 이가 아이고아이고를 연발했다. 자기 남편이 사장이라고 팔자걸음 하면서 아랫동서인 큰언니를 집안대소사 때 제 집 식모 부리듯 했던 이였다. 극도로 보수적인 지방에서, ‘현모양처’라는 낡아빠진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어렵..

[緣]짓다 2020.10.08

이생포

손목터널증후군(CPS)은 손바닥 한가운데를 지나는 정중신경이 눌려서 생긴다. 2012년 4월 처음으로 대형마트 강제휴무가 시작되던 날 오른손 인대를 터서 눌린 정중신경을 회복시키는 수술을 받았다. 흔적이 손바닥 손금 끝에 남았다. 통증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저림이다.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한 느낌이 지속되어 고통스러웠다. 수술 후 저림은 사라졌지만 이미 신경 손상이 많이 진행되었던지 손에 힘이 없고 손목을 비틀어서 따야 하는 병뚜껑 작업은 쥐약이었다. 엄지 아래 통통한 부분은 이미 근육 소실이 많이 진행되어 쭈글쭈글해졌다. 물건을 자주 떨어뜨렸고, 그래서 가위를 떨어뜨려 왼쪽 발가락 두 개가 골절되기도 했다. ... 다시 왼손에 그 익숙하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는 좀 되었다. 지난 봄부터 팔꿈치 통..

[問]던지다 2020.10.08

손가락을 깨물면

집안일을 좀 세게 하느라 손가락 두 개에 물집이 잡혔다. 습윤밴드를 붙였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지만 중지와 인지가 가장 열일하는 모양이다. 도무지 붙어있지를 않고 자꾸 떨어진다. 일을 많이 하는 손가락. 가장 많이 쓰고, 세게 비비고 오므리고 접는 지점. 습윤밴드란 피부와 상처의 특성을 헤아려 만든 제품이므로 자주 갈지 않고 계속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하루에도 몇 장씩 갈아붙였다. 어제부터는 아예 일반밴드로 바꾸었다. 일주일이 되었는데 아직아물지 못했다. 밴드를 붙인 손가락 두 개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한 부모에서 난 형제는 손가락과 같다고들 한다. 깨물어 꼭같이 아팠을 우리 오형제. 이제 부모님도 가시고 넷만 남았다. ... 맏이로 살며 진 짐이 가장 무거웠을 큰언니. 아우들에게..

[緣]짓다 2020.08.20

대처의 추파

2019년 발표된 김애란의 [비행운]에 실린 단편 에는 박완서의 을 인용해 달콤한 아이스모카 혹은 카라멜마키아토를 묘사하는, 전혀 감미롭지 못한 대목이 등장한다. 서울의 감미, "대처의 추파". 글쓰기 선생들이라면 OO의 OO, 이렇게 국적 불명의 소유격조사 '의' 두 개로 이루어진 조합을 두고 쯧쯧 혀를 차겠으나 어쨌거나 대단한 은유 아닌가. 1973년 여름 서울 안국동 종로경찰서 앞 한국걸스카우트연맹 회관 옆에는 딱 붙은 껌 같은 작은 퍼모스트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 있었다. 모 여자중학교 걸스카우트 담당교사로 지목된 (말인즉 그 학교에는 걸스카우트 자체가 없었으나 행사용으로 급조되었다는 뜻이다) 무용과 추영희 선생의 특별 배려 하에, 노란 삼각 스카프를 두르는 진초록 원피스의 걸스카우트 단복을 학교..

[問]던지다 2020.01.07

팡테옹, 볼테르와 볼테르

팡테옹 지하묘지에 있는 나폴레의 묘. 인류 역사 속 인물의 관이라니,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정말 저 속에 그가 누워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파리에서 특별히 쇼핑을 하지는 않았다. 누구는 백 사왔느냐고 묻더라만. (소위 3초백이라는, 그 가방을 말하는 듯. 내겐 없다.) 불친절한 파리 사람들에게 왠지 빈정 상해서, 그 나라에서는 별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소소한 기념품을 산 것이 다였고 약국식구들 선물은 몽땅 국적기 기내에서 구입했다. 파리에서 이정표로 삼은 곳이 호텔 근처 사거리 코너에 있는 Zadig &Voltaire라고,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브랜드 매장이었다. 파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다 호텔로 돌아올 때 이 로고를 보면 안심이 됐다. 헤매지 않고 맞게 잘 왔구나 하는 안도의 상징이랄..

하나 남은 뒷모습

오베르까지 가이드해준 채선생님이 보내준 사진 중에 내 뒷모습이 담긴 것도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것을 여러 번 고사했는데 그러지 말 걸 후회가 된다. 그 시간 속에 내가 있었다는 흔적이니까. 거기 내가 있긴 었었구나... 보내준 사진을 일일이 다운 받는데 걸리는 시간도 상당했다. 사진 하나 없는 나를 위해 보내주신 분의 수고야 말할 나위도 없다. 오베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지만 오베르쉬르오아즈는 오아즈 강 위에 있는 오베르라는 뜻이다. 오아즈 강변을 그래서 꽤 오래 걸었다. 근사한 가을날이었다. 물결은 잔잔하고, 강 위로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지나갔다. 전문가이드( 전문이라 함은 '상업적인'이란 다소 부정적인 뜻을 함유하는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완급을 조절할 수 있어 좋았다. 굳이 여..

어쩌면 버리러 가는 것

파리에서 돌아와 새로 장만한 폰 셋팅하랴 월말 결제하랴 시차적응하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여행의 의미는 사실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버리고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여우의 신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폰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하나도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개의치 않았다. 잘 처리하고 시간이 흘렀다. 이런 자신이 놀랍다.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공들여 쓴 소설 파일을 날려버리고 멘붕이 와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면 내 글이 아닌 게지, 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파리에서 찍은 수백장의 사진은 한장도 백업하지 못한 채 없어졌다. 내 폰은 아마 곧 배터리 아웃되었을 것이고,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내 기록들은 거기 파리 어..

수중에 종이 몇 장

무식하게 파리 여행하기가 시나브로 시작되었다. 반 강제로. 11월 22일 오전 1:45 페북에 올린(그것도 처음으로) 그 간략한 포스팅을 끝으로 내 폰은 동네(?) Zara home 쇼핑몰에 잠깐 들렀을 때 사라지고 말았으니. 아침부터 조금 무리하긴 했다. 며칠 혼자 다니면서 자신감이 붙어 여유를 좀 부렸는데 호텔 가까이 있는 역으로 가니 아뿔싸 1호선이 아니라 9호선이었다. 미처 확인을 안 했던 것이다. 1호선으로 환승하거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역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가서 타야 한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초조해진 나는 예약시간에 늦으면 큰일이므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예측이 안됐다. 우선 말이 안 통할 테니 우길 수도 없을 터였다) 일단 지하철을 포기하고 루브르까지 걸어가는 기백을 토해냈다. 8구 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