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처음이자 마지막 파리

하나 남은 뒷모습

진주로부터 2019. 12. 13. 21:59

 

 

오베르까지 가이드해준 채선생님이 보내준 사진 중에 내 뒷모습이 담긴 것도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것을 여러 번 고사했는데 그러지 말 걸 후회가 된다. 그 시간 속에 내가 있었다는  흔적이니까. 거기 내가 있긴 었었구나...

보내준 사진을 일일이 다운 받는데 걸리는 시간도 상당했다.  사진 하나 없는 나를 위해 보내주신 분의 수고야 말할 나위도 없다.

 

베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지만 오베르쉬르오아즈는 오아즈 강 위에 있는 오베르라는 뜻이다. 오아즈 강변을 그래서 꽤 오래 걸었다.  근사한 가을날이었다. 물결은 잔잔하고, 강 위로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지나갔다.

 

 

전문가이드( 전문이라 함은 '상업적인'이란 다소 부정적인 뜻을 함유하는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완급을 조절할 수 있어 좋았다. 굳이 여러 곳을 안내하려 할 필요 없다고 말했고, 특별히 설명을 듣고자 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걷고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랬으나 사진은 없고.ㅠㅠ)

고흐가 느낀 것, 고흐가 표현하려 했던 것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고흐의 그림보다 그의 글(편지)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조그마한 창문이지만 저 창을 열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일까요, 물었더니 하늘은 안 보인다고 한다.

 하긴 고흐는 항상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다. 도비니 미술관 근처 작은 공원에는 아래처럼 등에 화판을 맨 고흐의 동상이 서 있다. 저렇게 화판을 매고 오베르의 농가며 성당이며 밀밭과 강을 다니며 스케치 했을 것이다. 

 

고흐 같지 않은 고흐. 얼굴이 너무 평면적이다. (러시아 출신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이라더니, 너무 러시아적이다.) 

 내가 오베르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 없는 게 가장 아쉽다. 남의 사진으로 포스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억을 더듬어 몇 장만 올렸다.

 

 

                       가령 이런 것.  1641년... 오래된 흔적들.

 

고흐를 위해 만들었던 꽃다발, 언덕에서 평원을 내려다 보며 찍은 전경, 오래된 집들의 문과 창의 표정들,  오베르 성당 앞마당에 떨어지던 11월의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햇살, 오아즈 강변의 나무들.... 다 아쉽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와 오베르 전경을 폰에 담는 내가 담긴 사진. 그땐 내 손에 폰이 있었어.^^

 

 

 

들판에 꽃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꽃다발을 만들 정도는 되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꺾어 소박한 다발을 만들고 고흐의 묘비 앞에 놓았다. 드디어 여길 왔네. 작가의 무덤 앞에 꽃을 놓는 심정이었다.

 

오베르의 뒷모습은, 씁쓸했다.

 

 

 

 

오베르 시청 앞 프랑스 가정식을 판다는 한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가 오베르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식당은 텅 비어 있었지만 왠일인지 뒷쪽 구석진 자리로 안내받았고,  춥고 지저분한 그 구석 자리에서 정말 맛없는 점심을 먹었다. 나중에 영수증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사실은 빵값까지 받았다는 것. 오베르의 이면이라고 할까. 프랑스인의 동양인에 대한 불친절함을 몸으로 느꼈달까.

 

고흐는 이곳에서 70여 일을 머물면서 그렇게 많은 그림을 남기고 갔다.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쐈고, 며칠 후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살설도 존재한다. 스스로 겨냥하기 어려운 위치의 총상 부위, 손에 화약 흔적이 없었던 점, 가세 박사 딸과의 염문, 동네 부랑아와의 다툼, 마을사람들의 백안시 등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그림을 그렸었다면 하는 건 방관자의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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