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처음이자 마지막 파리

팡테옹, 볼테르와 볼테르

진주로부터 2019. 12. 18. 23:14

 

 

 

팡테옹 지하묘지에 있는 나폴레의 묘.

 

인류 역사 속 인물의 관이라니,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정말 저 속에 그가 누워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파리에서 특별히 쇼핑을 하지는 않았다.

누구는 백 사왔느냐고 묻더라만. (소위 3초백이라는, 그 가방을 말하는 듯. 내겐 없다.)

불친절한 파리 사람들에게 왠지 빈정 상해서, 그 나라에서는 별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소소한 기념품을 산 것이 다였고 약국식구들 선물은 몽땅 국적기 기내에서 구입했다.

 

파리에서 이정표로 삼은 곳이 호텔 근처 사거리 코너에 있는 Zadig &Voltaire라고,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브랜드 매장이었다. 파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다 호텔로 돌아올 때 이 로고를 보면 안심이 됐다. 헤매지 않고 맞게 잘 왔구나 하는 안도의 상징이랄까.

몽마르뜨 가려고 나왔는데 약속시간이 남아 산책을 나갔다가 그곳 쇼윈도우에서 빨간 코트를 보았다. 색이 예뻐서 들어갔지만 입어보니 가장 작은 사이즈도 내겐 너무 큰 데다가 순모도 아니라 무겁고 따뜻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포기하고 나가려는데 옆에 걸린 검은색 블레이저가 눈에 들어왔다. 촉감이 좋은 벨벳에 소매가 특이했는데 단추도 없고 손을 들면 약간 벌어지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고 손볼 데도 없이 퍼펙트 핏이었다. 가격표를 보고 재빨리 암산해보니, 서울에서도 웬만큼 마음에 드는 자켓 하나를 사려고 해도 이 정도면 더 주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호텔로 돌아올 때마다 내게 평온을 선사했던 곳이기도 하고.

 

리펀드를 받아야 한다니  잘 해낼 수 있을지 괜히 불안해졌다.

한번도 안해본 일이다. 더구나 나혼자 출국하는데. 가능할까.

 

공항에 도착해 보니 DETAXE 사인이 있는 곳은 역시나 줄이 아주 길었다. 리펀드 받으려다 비행기 놓친 일화를 들은 기억도 났다. 포기할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프랑스로부터는 꼭 돌려받아야 할 것 같았다. 이건 심술, 맞다.  

 

둘러보니 자동화기기 같은 것이 보인다.

(돌아와 검색해보니 파블라고,  2014년부터 설치됐다고 한다.)

휴대폰이 없으니 여차하면 리말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게 버릇이 됐다. 그래도 될 만큼 어디나 한국인이 많았고 또 친절했다. 

  "리펀드 받는 거 여기서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고 나와 있긴 한데, 우편함에 넣는 것까지 해야 하는지 지금 검색 중입니다."

  

인터넷이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엔 다 어찌 살았을까 싶다.

모두가 다 휴대폰을 들고, 찾고 묻고 처리하고 담는다.

 

일단 해보자. (이런 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잖아? 우리, 코리아야.  IT강국이라고.)  

파블로에 여권과 보딩패스, 바코드를 스캔하니 단번에 "스마일" 표시가 뜬다. 아주 쉽게 승인이 완료되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다시 직원이 있는 창구로 가서 도장을 받아 봉투에 넣어 우편함에 넣어야 한다니, 쟈딕앤볼테르 매장에서 택스리펀 서류(BORDEREAU DE VENTE A L'EXPORTATION)를 완벽하게 준비해준 모양이다. 우편함에 바로 집어넣을 수 있게 봉인풀이 묻은 봉투에 들어있었고, 판매자 VENDEUR 사인도 있었다. 물론 구매자 ACHETEUR인 내가 서명도 했었다.

중국인 관관객을 위한 중국어 안내문도 들어있다. 머지않아 루브르 안내서처럼 한국어가 들어갈 날을 기대함

 

 

                        왼쯕 상단에 있는 바코드를 파블로에 대고 스캔하면 된다. 

                        흰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 같아도 있을 것은 다 있다.

                        리펀드 금액은 물론 카드 번호, 구매자 이름, 국적, 생년월일, 여권번호 등

 

공항에서 직접 현금 리펀드를 받는 게 아니니까 카드결제 통장으로 이체되기까지 보통 1-2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기다려보면 알 일이다. 내가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리펀드받는 일을 제대로 잘하고 왔는지.

 

 

 

봉투에 물을 묻혀 봉하게 돼 있다. '파블로'로부터 스마일 사인을 받았으므로 우편함에 넣지 않고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팡테옹에 묻힌 '작가'는 딱 셋이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볼테르-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cois-Marie  Arouet). 기념품점에서 산 연필 세 자루 가운데 '볼테르'가 박힌 연필만 남았다. 너마저 볼테르? ^^  

       

팡테옹 얘기를 덧붙이자면, 느 파리지앵이 팡테옹을 꼭 보라고 했다며 제자가 쉬는 주말을 이용해 가보자고 해서 함께 갔다.

우리가 외국인에게 종묘를 추천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지 싶다.  왕가의 무덤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간이다.  언제나 불을 밝히는, 저항에 몸을 사른 앞선 사람들을 기리며 다시 저항의 칼을 벼리는, 그리고 역사의 이름으로 나폴레옹까지 아우르는 관용의 공간. 

                                   

 

 팡테옹 지하 묘지. 양쪽으로 프랑스 2월 혁명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나폴레옹의 주검과 묘하게 대비된다.

 

 

                                

 

                       그  저항을 기억하며 늘 환하게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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