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모두 일곱 그루의 나무를 만났다.
여전히 야광나무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자는 어떤 결말로 책을 덮게 될까.
어느 날 약국으로
아주 크고 길쭉한 상자가 택배로 도착했다.
내 야광나무 타령을 보다 못한 어느 독지가(?)께서
진짜 야광나무를 화분으로 보낸 주신 것이다.
Images à la sauvette, 소위 결정적 순간이랄까.
참으로 신비스러운 경험이었고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그분은 내 초등학교 동창의 후배였는데
어쩌어찌해서 <진주의 집> 블로그를 알게 되셨다고 한다.
빨간 보석같은 열매가 어찌나 많이 달렸는지
가지가 안쓰러울 정도다.
꽁꽁 잘 싸매 준 덕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워낙 열매가 무성해 몇 개는 떨어졌다.
집으로 빨리 모셔오느라 그날 아주 이르게 퇴근했다.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매일매일 눈을 마주친다.
꽃이 피면
꽃이 피면 봄밤에....
도시의 불을 끄고
'야광'을 감상하리.
이렇게 선물로 부쳐져 온 야광나무가 이제 8번나무다.
열 그루의 나무 이야기라고 했으니
두 나무가 아직 남은 셈인가.
이야기는 이제 서서히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11월 20일
화분을 받은 며칠 후 뒤통수를 누군가가 마구 후려치는 느낌과 함께 이 사진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열어 갤러리를 뒤졌다.
위의 11월 20일 사진은 그보다 앞서 온실 앞 오르막길을 양방향으로 나누는 분리대에
예쁜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보고 와서,
서로 비교하느라 한 달 후 다시 찍은 사진이다.
10월 10일 사진
바로 이 나무다.
10월 10일에 첫 발견하고,
<무슨 나무>라는 파일명으로 저장해 두었었다.
11월 25일 사진
긴가민가 하다가 며칠 후 볕이 좋을 때 다시 가서 찍었다.
잎은 거의 지고 열매만 남았지만
이럴수가!
거잣말처럼 선물로 받은 야광나무 화분과 똑같지 않은가.
내가 도대체 뭘 보고 다녔던 거야.
내 안목을 그리고 집중력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참으로 눈뜬 장님이었다.
이런 '맹목'이라니.
흥분을 누르고 다시 찬찬히 살펴본다.
몇 남지 않은 이파리도
가지가 안쓰러울 만큼 무성한 열매도
가로 줄이 그어진 줄기도
새 순이 곧 돋을 듯한 가지끝 눈도
내 눈엔 화분과 꼭같다.
여기 있었구나. 너 여기 있었어....
반갑고 신기하고 또 허탈했다.
여기 두고 어디를 헤매었던 것인가.
돌배나무와 아그배나무와 산사 혹은 꽃사과나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결국 뒤엉켜버렸던
진실의 순간이었다.
현충원 온실 앞 오르막길 분리대에는
이렇게 두 나무가 살고 있다.
9번나무와 10번나무가 살고 있다.
그 이름은,
야광나무라고
내년 봄에 나는 크게 소리칠 것이다.
오늘 아침 화분에 새 잎이 돋았다
내게는 열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나를 들었다놨다 하는 열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한 나무를 빼고는 내가 가진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으로 언제나 나무들을 봅니다.
평화롭습니다.
그대도 부디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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