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로 끝나는 이야기는
어딘지 상투적이다.
극적인 장치가 있지 않을까
희망을 놓지 않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현충원에는 인근 산책로로 이어지는 문이 여럿 있다.
동작역 쪽 출입구를 주로 이용하는데 그리로 오르는 언덕 우측에
온실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무를 가꾸고 화분을 갈무리하고 숲을 돌보는 이가 있을 만한 곳인데
볼 때마다 문은 늘 잠겨 있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였다.
야광나무 찾기를 그만둔 후 몇 달이 지나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어느 날
그 금단의 문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뜰을 가로 질러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서너 명의 장정들을 향해 나는 다짜고짜 여기 나무 관리하시는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어안이 벙벙한 열굴을 하면서도 모두가 함께 이 사람이요, 라며
한곳을 가리켰다.
내가 다시 물었다.
"현충원에 야광나무가 있나요?"
초로의 전문가는 내가 내미는 휴대폰 사진을 보더니
"이건 아그밴데..." 하신다.
그리고는
"여기에도 아그배나무가 한 그루 있어요. 꽃이 피면 향이 아주 좋지요."
그리하여 나는 그날 7번나무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껏 2번이나 6번으로 불리던 나무들의 이름이 아그배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세 계절이 지났다.
가장 우람한 나무였지만 사진 상태가 안 좋다.
늦은 시각이고, 열매도 잎도 다 졌으며, 역광이었다.
잠시 후 온실 뒤로 달이 떴다.
달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이 사진을 건졌다.
유품전시관 기와 위에 달이 떴고
아그배나무가 검고 긴 가지로 달을 감싼다.
달과 야광나무.
근사하지 않은가.
드뷔시의 달빛이 흐르는 밤이면
그대가 있는 깊은 숲속 야광나무에는 달이 걸리고 별이 걸리고 바람도 걸리겠지만
도심 속 나무는 물론 Malus baccata 그 야광나무가 아니다.
그러나 밤에 빛나는 꽃나무는 다 '야광'나무다.
진짜 야광나무가 아니면 어떠리.
내게는 일곱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를 흔들어놓은 일곱 그루의 나무입니다.
내가 가진 것도 아니고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으로 언제나 이 나무들을 봅니다.
평화롭습니다.
그대도 부디 평화롭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미치도록 나무를 알고 싶도록
현충원에 이 나무들을 심은 누군가에게
그리고 오류투성이 인터넷 사진과 설명에
어렵게 (인터넷도 불통인 오지에서) 검색해 결과를 퍼 날라준 지인에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불쑥 내민 물음에 답해준 블로거들에게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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