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동정(同定)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수많은 사진과 설명 모두,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겪으니 그 어려움이 더 실감났다.
현충원에 야광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누군가의 사진과 글에서 시작했던 내 긴(?) 여정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다. 실패는 맞는 표현이 아니다. 야광나무는 없다는 슬픈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처음 야광나무라고 생각했던 1번나무는 돌배나무였다. SNS에서 알게 된 한 전문가에게 사진을 보여드린 후 비로소 "최종적이고도 완전하게 검증된(FFV)" 동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기 시작했을 때 '야광나무가 아닌 것 같다'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 나무에 엄지 한 마디 크기의 커다란 열매가 달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야광나무를 찾은 것 같다는 내게 그건 아그배나무일지 모른다고 주의를 주었었다.
아. 그래. 아그배라니. 딱 듣기에도 '아기 배' 같지 않은가.
처음 발견했던 하얀 꽃을 피운 1번나무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돌배(혹은 산돌배)나무로 판명되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슷한 나무 두 그루를 더 발견했지만 이들도 야광은 아니었다.
그 앞에 늘 차를 세웠었음에도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나무였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나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벚꽃이나 배롱나무 정도만 알아보는 눈에 그 나무들이 보였을 리가 있었겠는가.
나무가 이럴진대 누군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더 지난할밖에. 내 형편없는 안목을 다시 확인한 셈이었다.
그래서 야광나무를 찾으려던 이 어리석고도 안타까운 여정을 여기 뒤늦게라도 기록하려고 한다.
여전히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있었던 1번나무에서 꽃이 질 무렵 새로운 나무 두 그루가 등판했다.
갑자기 비슷한 나무들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실은 틈만 나면 현충원에 들러 하얀 꽃이 핀 나무들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 1번나무 꽃보다 더 동글동글하고 풍성한 느낌에 무더기로 꽃이 핀 나무 두 그루를 발견했다. 꽃도 달랐지만 잎도 차이가 났다. 가장자리가 뾰족하지 않았고 동그스름한 편에 높은 가지쪽 잎이 갈라지기도 했다.
다른 나무인 건 분명했지만 야광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나무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시간이 흘렀다.
한달이 지나자 열매가 제법 굵어졌는데 1번나무보다 더 작고 끝에 꽃받침이 없었다. 다른 나무임이 분명했다.
여기저기 찾고 물었더니 야광나무와 착각하기 쉽다는 비슷한 나무들 이름이 여럿 나왔다. 산사, 아그배, 꽃사과.. 그렇다면 어느 것이 야광나무일까. 내가 처음 야광나무라 믿었던 1번나무의 열매는 2,3번 나무보다 훨씬 컸고 여럿이 뭉쳐 난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열렸었다. (왜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는지) 야광이 아닌 것 같다는 슬픈 결론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초보자가 알아보기 쉬운 건 역시 열매다. 잎과 꽃의 시간을 지나 맺는 '과실'을 알아보기 쉽다는 사실은 꽤 철학적으로 들린다. 4월에 꽃이 피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여름이 가까워오자 드러났다. 배처럼 생긴 아주 커다란 열매가 열렸고 꽃받침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잎 가장자리의 돌기도 야광나무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혹시 아그배나무?
하지만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아그배'란 무늬(이름)만 그러할 뿐 배가 아니며, 오히려 사과나무라고. 영어로 아그배나무는 정말 crab apple tree였다.
이런.
이 나무는..... 돌배나무였다. 야광이 아니라 정말 배나무였다.
배나무꽃, 그래 이화.
4월을 환하게 밝힌 배꽃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나무란 말인가...
5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고 양지와 음지로 나뉘어 서서 꽃이 더 풍성하고 덜 풍성한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나무인 두 나무, 2번과 3번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다시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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