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처음이자 마지막 파리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진주로부터 2019. 12. 3. 22:07

 

내가 아주 비싼 비행기 타고 와서 봐야 하는 그림과 조각들 앞에서,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바닥에 스케치북을 펴놓고 수업하는 것을 봤을 때의 느낌은

가히 문화적 충격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서양사에서 배운 함무라비 법전이 책이 아니었다니... 단견과 편견이 빚은 오해였다

 

전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루브르는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하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줄 서서 기다리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고 들었다. 48시간 뮤지엄패스를 구입하니 며칠 후 도착했고, 홈페이지에서 뮤지엄패스 소지자 코너를 찾아 가장 첫시간을 예약하고, 입장권 출력까지 마쳐서 출국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거 매우 잘한 일이다. 스포일러 조심.^^) 나도 이런 거 젊은이들처럼 할  수 있거든!  자존감 한껏 업. 

 

루브르 박물관을 4시간 반 정도 압축 관람하고 (여기서 #팁. 한국인 가이드를 선택해 4시간 정도 그냥 쓱 흝고, 그리고 시간 내서 따로 보는 게 좋다. 너무나 방대해서 오르세처럼 관람리스트를 만들거나 동선을 짠다든가 하는 일이 무의미했다. 아마 평생 볼 일이지 싶다.) 뮤지엄패스가 살아있는 김에(48시간이니 빠듯하긴 했다) 내처 벼르던 퐁피두센터까지 가보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루브르까지도 걸어왔는데 싶어 그냥 내 다리를 믿고, 씩씩하게 걸어서 갔다. (8구에서 4구까지, 대체 왕복 시간이 얼마야....대단한 내 다리.)

피카소와 후안 미로, 앙리 마티스, 칸딘스키,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라울 뒤피 등 내 깜냥에도 알 만한 현대작가가 다 모여 있었다. 센터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가 매우 엄중했다. 정작 건물로 들어간 다음 뮤지엄 입구에서는 내 뮤지엄패스가 관람유효기간을 초과했다고 삐익 소리를 내며 화면에 빨간 X를 그렸음에도 잘 생긴 파리지앵이 혼자 왔느냐고 묻고는 쿨하게 그냥 들여보내주는 매너를 발휘해 약간 감동했다. 파리 사람들 영어 못 들은 척 하는 데 짜증이 슬슬 나던 참이었는데 분노게이지가 한 절반 정도 뚝 떨어지는 정도?

 

 

 

 

 

 

 

 

 

 

 

 

이밖에도 좋은 그림이 많았고 돌아와 찾아보고 싶은 작가도 많았다.

그러나 감동은 여기까지.

여기까지 쓰고 (11월 22일 17시 45분, 서울 새벽 2시)

나는 곧 폰을 분실했다. 아니 '쓰리' 당했다......

 

 

                                                 집시가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만 하게 되는 내 휴대폰의 마지막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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