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던지다

늙으면 이름만 남고

진주로부터 2019. 9. 4. 21:14

퍽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간 통 글을 쓸 수 없었다. 몇 번 쓰다 지웠다.)

 

정기 건강검진을 앞두고 시간 여유가 좀 있기도 하지만 실은 사흘째 거의 굶어서 배도 고프고, 게다가 위경련까지 와서 탈진하고 보니, 아침까지 딱히 할일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다섯 시부터 시작해 장(腸) 정결제를 비장한 마음으로 1리터까지 마셨는데 새로 약을 타서 다시 한 모금 마셨을까 바로 위경련이 시작됐다. 

내 위(胃)는 왜 장(腸)보다 자기가 더 위에 있음을 이렇게 신랄하게 주장하는 것일까. 장으로 채 내려가기도 전에 탈을 낸다.

배는 부풀어오르고 장은 기별도 없는 채 위경련으로 온 몸에 쥐가 나고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 통증은 참 대책이 없다. 결국 병원에서 정해준 양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중단하고 그만 널브러졌다. 

에이 될 대로 되라, 내일 검사 못 받으면 그만이지... 포기하고 나니 딱히 할일이 없는 것이다.

 

(블로그의 무거운 느낌이 여전히 싫다.)

생각보다 꽤 두꺼운 故황현산의 트윗모음집이 오늘 마침 도착해서 그런가 지금 나도 모르게 그 짧은 말투를 흉내내고 있다.

아무 쪽이나 두서없이 펴서 읽어도 좋은 글 모음이다.

굳이 노트북을 연 이유는 아래 대목 때문.

"걸어다니는 식물도감 행세를 한 적이 있다. 동료들과 산에 갔을 때, 꽃이름 몇 개를 말했더니 움직이는 식물도감이란다. 별명이 부담스러워, 식물도감을 놓고 외웠다. 이런 지식의 허점, 겨울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늙으면 이름만 남고 그림은 사라진다."

나라면 쉼표 두 개는 안 썼을 터이다.  선생은 "글에 구두점을 많이 찍는 게 이롭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저 글에서 쉼표를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늙으면 이름만 남고.... 그래. 이름만 남고 그림(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인생의 겨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삶에 아름다운 것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정기 검진을 앞두고 괜한 감상이다.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아프고 난리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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