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아프지마오약국입니다

과제하듯

진주로부터 2018. 2. 19. 12:38




  • 약국을 찾는 환자들에게 약사로서의 위상을 세워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다.뒤늦게 약국을 시작한 내게 주어진 과제 같기도 하다. 병원의 의사가 하는 말에 토를 달거나 거래를 하자고 드는 사람은 없지만 약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우리 현실을 탓하기보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하나씩 해결하자고 마음먹었다.


    칠십대 이후 남자들이 특히 의심이 많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럴수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약속하면 두 번 세 번 챙기고 복약지도에 더해 나쁜 생활습관도 잔소리를 해드린다. 이런 분들은 한번 신뢰가 쌓이면 충성도(?)가 높다. 무엇보다 좋은 변화는 약국과 약사에 대해 깍듯해진다는 것. 


    긴 명절 연휴를 끝내고  (남들과 반대로 나는 이럴 때 '열일'한다. 아주 센 강도로, 하루 열 시간을 넘게!) 모처럼 늦잠자는 호사를 누리는 내게 두 통의 전화가 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둘 다, 말하자면 주문(?) 전화였다.


    한분은 용인 송전리에 사는  중국 동포. 일년에 한 서너 번쯤 드시는 제품을 찾는다. 이분은 꼭 먼저 돈을 보내주시는데 나는 착불로 하지 않고 약국에서 택배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이에 보답한다.

    이분도 여기까지 오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 권유한 후로 한 세 번쯤 방문해서 한 개씩 복용한 후에 한 달치를 구입했다. 용인으로 이사를 간 지금도 꼭 내가 약국에 지금 있는지 언제 나가는지 묻고, 직원들에게 택배 주소 잘 적어 보내도록 잘 일러두겠다고 해도 두 번쯤 확인하신다. 대금을 꼭 먼저 이체해주고, 돈 잘 들어왔는지(!) 확인하라며 또 문자를 보낸다. 택배가 도착하면 아마 또 잘 받았다고 먼저 전화나 문자를 주실 것이다. 

    처음 약국에 오셨을  때 "아줌마" 이러셨는데 이제는 나를 '권약사님"이라 부르신다.


    또 한분은 설사를 두 달이나 하셨다고 명절연휴 전에 찾아오신 분이다. 병원도 다녔지만 낫질 않아서 오셨다. 두 가지를 권해드렸는데 한 가지는 80포짜리 한 박스를 구입했지만 한가지는 이틀치만 가져가셨다. 꼭 두 가지를 함께 드실 것을 권했지만 먹어보고 결정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시더니 명절 끝나자마자 전화를 주신 것이다. 약국에는 이미 (명절 연휴에 거의 다 나갔다) 재고도 거의 없고 제약사 품절 중인 걸 아는지라 수소문하니 오늘 저녁때나 구해올 수 있다고 제약사직원이 말한다. 내일 댁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직접 오시겠다며 내일 몇 시에 문을 여는지 당장 오픈에 맞춰 오시겠다고 한다. (그러게 진작 다 가져가시지...^^) 


    이렇게 복기하니 간단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늘까지 쉬는 큰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엄마 전화하는 소리가 왜 이렇게 크냐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고령인 분들이라 잘 들리지 않으시니 내 목소리가 높아질밖에. 의사 전달도 쉽지 않았다. SC제일은행을 알아듣게 하는 데 한 십 분 걸린 것 같다. 그냥 제일은행이라고 하면 그런 은행은 없더라고 하실까 봐  SC까지 붙여서 말하는 데 애먹었다. 주소도 이전 주소와 도로명 주소 둘 다를 불러주신다.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뜨지만 다시 불러주시고.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주문을 마쳤다.

     

    돌아가신 시아버지 생각이 난다. 덕분에, 더한 깐깐함에도 나는 아주 잘 적응한다. 이렇게 도움을 주실 줄이야... 하는 못난 생각을, 떨친다. 그럴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2018년 1월 1일이나 무술년 정월 초하룻날이 아니라 명절 연휴가 끝난 지금이 내겐 비로소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또 하나 새로운 꿈을 꾼다. 내 약국과 내가 가진지식을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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