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아프지마오약국입니다

퇴근길 소회(所懷)

진주로부터 2019. 1. 2. 21:15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달은 겨울철 자정 무렵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경인고속도로와 만나는 서운분기점 서울방향 어디쯤에 뜬 달이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달은 그러니까 수많은 시와 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렇게 GPS로 짚어내듯 특정한 지정학적 지점과 또 시점을 가진, 밋밋하기 그지없는 그런 달인 것이다.

 

수고했어요 이 하루도.

루시드폴의 노래 가사처럼 지친 나를 따라온 차창 밖 달은 힘든 내 노동에 어쩌면 보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동공에 가득 찬 맑은 눈물이 마치 렌즈처럼 작동해 달을 크게 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달은 마치 볼록렌즈를 들이댄 듯 정말로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컸고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곤 했다.

 

달은 경인고속도로에서 금세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지루한 지하차도를 지나 여의 하류 IC에서 올림픽도로로 들어서야 비로소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달을 보려고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자꾸 허리를 굽혀야 했다. 

 

 

 

오래 전에 쓴 글이 있다.

 

여자, 달을 보다      

누가 내게, 네가 본 아름다운 달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조른다면 나는 어젯밤 경인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본 달을 그 중 하나로 꼽겠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자정 무렵 서울외곽고속국도 서운분기점을 돌아 경인고속도로에 합류해 들어가는 내 입에서 앗, 소리가 새어나온다

  달 좀 봐. 저 달 좀 보라구.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속삭이고 싶다.

달이 거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겨울 달은 아주 크고, 그리고 속이 비칠 듯 투명했다. 달이 그렇게 크다는 사실을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다. 나를 덮칠 듯 아주 커다랗고 투명한 달은 내가 집으로 오는 내내 아랫도리 반만 드러낸 모습으로 핸들을 잡은 내 오른쪽으로 또 왼쪽으로 비켜서고 가로막고 따라오며 그렇게 떠 있었다.

달빛이 차안을 가득 채우고, 내 몸은 부풀어 올라 둥둥 떠갔다. 달이 음기를 품었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정서가 내게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마침, 정자를 만나지 못한 내 벽이 두터워지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이건 아주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진술이다.) 

 

유난한 생리통이었다. 평생 모르고 살았던 통증이다. 이제 늙나 보다.

문득 내  알은 앞으로 몇 개가 남았을까, 생각했다. 열 개? 스무 개? 무배란 주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알(난자)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즈음 꿈 많은 잠과 극도의 피곤함 속에도 자주 깨곤 하는 새벽도 아마 상관없지는 않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폐경이 가까워온다는 전형적인 신호 같아 조금 쓸쓸해졌지만 나는 함지박사거리까지 따라온 달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 달은 저렇게 여전히 아름답다고.

지하주차장 입구를 돌아 들어갈 때 달은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페이드아웃.

 

 

하지만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인생은 아름답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머리를 짧게 자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그렇게 자른 머리도 무척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 내 친구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항암치료를 받았던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내 친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2010년 내내 퇴근길의 경인지하차도는 <공사 중 서행>이었다.

자정에 약국 문을 닫고 나서는 내가 통과할 때쯤 늘 공사는 시작됐고 신월IC에서 지하터널로 접어들면 목동교 입구까지 하나의 차선만 허용됐다. 차량 흐름이 뜸할 때를 골라 공사를 시작하는 게 물론 합리적이지만 야간운전자들에겐 사실 큰 위협이었다. 자정의 터널 병목은 참으로 끔찍했다. 사방의 클랙슨 소리, 앞차와 간격을 조금이라도 벌리면 방향지시등도 없이 끼어드는 무례함, 급정거한 차의 브레이크등 불빛. 다시 빵빵 클랙슨.  생리적 흥분의 고조로 주의력과 정보처리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다는 심리적 터널시야 현상이 정말로 나타났다.

아니라도 터널 속에서 눈은 당연히 터널시야를 본다....

 

원래도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꾸벅꾸벅 졸기에 안성맞춤인 길이었다. 시야는 좁았고 조도가 낮았으며 채 연소되지 않은 원소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睡氣를 유발했으므로 볼륨을 높이고 준비한 얼음수건을 눈위에 갖다 대고 때로는 정말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고집한 것은 순전히 비행기 때문이었다.

운전석 바로 앞 시야를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며 나는 푸른 바다를 유영하던 고래가 커다란 몸집을 뒤채며 바다 위로 떠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언젠가는 나도 떠날 수 있다는 기대를 지닐 수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은 내게 이상한 안도감과, 위로를 함께 주었다.

 

 

그 고속도로에 지금 커다란 새가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고래가 수면을 박차며 솟구쳐 오르고 있다.

 

(아주 아주 오랜 불편함을 감수한 대가로 경인고속도로는 이제 또렷한 차선과 거울처럼 반들반들한 노면을 자랑하고 있다. 비록 진입로는 아직도 <공사중>이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사진에 함께 담을 날이 올 것이다. 여전히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 혹은 물고기.